80년대 중반, ‘영구야, 영구야'라는 코메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코메디는 심형래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했다. 기계 총이 있는 지저분한 머리, 앞니 빠진 점박이 얼굴. 우스꽝스러운 언행으로 늘 당하기만 하는 주인공.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바보 영구' 캐릭터다. 이 프로는 ‘영구 없~다.'라는 유행어를 낳으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야기 한 토막. 「친구네 집에서 달걀 프라이를 몰래 훔쳐먹은 영구. '네가 먹었지?'라며 추궁하는 친구에게 ‘아니, 나 계란 프라이 안 먹었어'」라며 순진하게 ‘이실직고'를 하는 ‘영구'캐릭터 속에서 ‘영구 없~다.'라는 유행어가 탄생한 것이다. 신 군부독재로 인해 암울했던 시절, 대중들은 ‘바보 영구'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일상의 고단함을 견디었을 터다.
“지지도 바닥, ‘바보 노무현' 효과 사라진 탓”
바보 캐릭터의 본령(本領)은 순진무구(純眞無垢)에 있다. ‘영구' 캐릭터 경우, 숨김도 가식도 없는 행동 속에서 자기 함정에 빠지는 식이다. 때론 엉뚱하게 자신을 바보 취급하는 사람들을 골탕 먹이기도 하는 영악함도 있다. 어찌 보면 ‘영구'는 바보지만 바보 같지 않는 기발함 속에서 대중들을 웃기면서 행복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캐릭터라 하겠다.
한때 ‘바보 노무현'이라는 말이 유행된 적이 있었다. 정치인 노무현의 캐릭터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원칙주의자로, 지역감정의 벽에 정면으로 도전한 이상주의자였다. 손해 볼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도를 벗어나지 않고, ‘옳은 편'에 섰던 그런 모습을 빗댄 표현이다. 적어도 3당 합당을 거부하고 이후 두 차례 연속 부산선거에서 낙선했던 즈음의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바보 노무현'은 비하의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애정과 신뢰와 존경의 마음까지 담긴 일종의 역설적 애칭이었다. 그 같은 상징적인 이미지는 대중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고, 결과적으로 대통령직에 오르기까지의 큰 자산이 되었다.
노 대통령은 이 같은 호응을 바탕으로 취임 당시 80%를 넘나드는 지지도를 자랑했다. 거대 야당의 탄핵 역풍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지지도가 퇴임 1년 반을 남긴 현 시점에 10%대로 곤두박질쳤다. ‘바보 노무현' 효과가 사라진 탓이다.
김병준 전 대통령 정책실장이 대통령 정책기획위원장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이다. 그는 논문표절 의혹에 휩쓸려 교육부총리직에서 낙마한 지 두 달여 만의 복귀다. 이를 두고 전형적인 ‘코드인사' ‘회전문 인사'라며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노 대통령 특유의 ‘오기' 인사다. 이미 도덕적 결함으로 낙마한 사람을 재기용하겠다는 발상이 놀라울 따름이다. 내 참모를 내가 쓰는 데 무슨 참견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인사에는 최소한의 원칙과 명분이 있어야 한다. 더구나 도덕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할 청와대 요직이기에는 더욱 그렇다.
노 대통령의 ‘오기' 인사는 이번만이 아니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밀어붙이기식 인사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대전시장 낙선자였던 염홍철씨의 중소기업특별위원장 임명과 이재용 전 환경부장관의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임명, 그리고 김완기 전 청와대 인사수석의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이사장 임명 강행 등이 작은 사례일 뿐이다.
“국민에게 행복 파는 ‘바보 노무현'이기를”
이제, 노 대통령은 ‘바보 노무현'이 아니다. 이미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순도 100%의 원칙주의자가 아니다. 스스로 말했듯이 구중궁궐을 벗어나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싶어 하는 '평범한 노무현'일 따름이다. 임기 말이 가까워질수록 그 평범함은 극에 달할 것이다. 바로 ‘보은인사'의 유혹이다. 코드인사를 비롯해 낙하산 인사, 회전문 인사, 경력 관리용 인사 등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잘못된 인사시스템을 교정하지 않는다면 낭패는 ‘바보 노무현'에게 갈 것이고, 피해는 국민의 몫으로 돌아 올 것이다. 이쯤이면 ‘바보 영구'가 그리울 수밖에 없다. 같은 ‘바보'이기는 하지만 국민들에게 주름을 주는 ‘바보'보다는 대중들에게 행복을 주는 ‘바보'가 차라리 낫다. 남은 임기 중이라도 국민들에게 행복을 파는 ‘바보 노무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